공지사항 겸 방명록(200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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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프린스 | 2009/12/31 23:59 | 덧글(5)

왜 산업혁명은 유럽에서 일어났는가

* 이 글은 SF & 판타지 커뮤니티 Joy SF에 11월 27일에 쓴 글을 블로그에 재탕하는 것임.


아래 이와 같은 글이 있던데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직 그 정답은 아무도 모르며, 답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노벨상 2개는 따라올겁니다. 우선 중요한 문제는 최근 학계에서 논의의 촛점은 '왜 아시아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보다는 '왜 서유럽에서, 특히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는가.'로 바뀌어가는 추세입니다.

사실 산업혁명은 자본주의와 함께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상업력에 의해 이루어진 '상업 자본주의'는 중국이나, 심지어 조선후기에도 희미한 흔적을 보이지만(하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은 경제사학계에서는 거진 근거가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추세) 이것이 본격적인 '산업 자본주의'로 발전하는건 영국이 유일하거든요.

산업혁명이 자본주의와 함께 이야기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산업혁명이 기계제와 임노동제의 도입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자본가 계급이 등장해야지만 이러한 생산양식과 기계의 도입 필요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막스 베버(Max Weber)적 견해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에서 산업혁명의 원천은 서구의 기독교라는 종교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인도, 중국과 서유럽을 비교합니다.
인도의 불교나 힌두교는 무소유와 윤회를 핵심 이론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윤회 개념은 생산양식 결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러한 윤회 개념은 현세에서 자본 축적의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전근대 사회라면 대부분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부는 죄악이다.'는 이데올로기를 취하기 마련인데, 윤회 사상이 사회 전반적으로 통용된다면 내세의 편안함을 위해 현세의 자본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한편 동아시아(=중국)의 경우, 서유럽에 비해 대규모 치수 공사가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치수공사는 역사 초기부터 관료제와 계급사회, 법률, 정치체제를 낳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잉여는 체제의 상층부에 집중되게 되거든요. 그리고 유교와 같은 이데올로기 또한 이러한 상층부의 부의 축적을 집중시키는데 일조를 했구요. 그로 인해 자본가와 노동자 분화가 불가능했고, 결과적으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유럽, 특히 종교혁명 이후에 등장한 프로테스탄티즘은 부의 축적을 사회적으로 용인합니다. 다시 말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하느님에게 축복받은 증거라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부의 축적에 관대해지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는 나아가 임노동자, 즉 농업에 기반한 생산자가 아닌, 도시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생산활동에 정당화가 부여되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성립하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비용을 낮추기 위해 기계제를 도입하면서 산업혁명이 발생했다는 이론입니다.
특히 영국의 경우에는 백년 전쟁의 피해가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섬나라여서 봉건제가 오래 유지되었으며, (독일해 비해) 종교전쟁의 피해도 적었다는 점, 헨리8세 이후 비교적 빨리 카돌릭과 결별한 것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 비해)프로테스탄티즘 유입에 우호적으로 작용한 점 등으로 인해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발생시키게 됩니다.



마르크스(Karl Marx)적 견해

마르크스는 서유럽의 봉건제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동력이라고 봅니다. 잘 알려진 마르크스의 역사 5단계, 즉 원시공산사회-노예제-봉건제-산업사회-공산사회 의 테크트리를 서유럽이 착실히 밟았다는 주장이지요. 원시공산사회가 생산력을 발전시키면서 차츰 계급이 분화가 되는데, 노예제 사회에서 있던 노예-시민의 2층적 사회구조는 봉건제에서 농노-귀족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력이 발전하므로, 농노와 귀족의 중간 계층, 즉 부르조아지가 성장하게 됩니다. 이들은 시민혁명을 통해 귀족을 타도하면서 생산력을 차지하는 계급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산업혁명의 동인은 봉건제에서 산업사회로 이어지는 생산력의 발전(이것은 마르크스 세계관에서는 결정론적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잉여 착취를 차지하는 부르조아지 계층의 성장입니다. 서유럽에서는 부르조아지 계층이 용케(이는 어느정도 역사적 우연이 작용합니다.) 귀족을 타도했지만 동양에서는 부르조아지 계층이 귀족세력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거나, 혹은 아시아의 미개성 때문에 봉건제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업사회로 진입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좀바르트(Berner Sombart)의 견해

역사상 자본주의(Kapitalismu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베르너 좀바르트는, 산업사회가 발생한 원인을 여성(과 귀족. 하지만 대체로 귀족 여인)의 사치에서 찾고 있습니다.
좀바르트의 견해는 마르크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산업사회의 원인이 봉건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즉 동양에서 산업사회가 발생하지 않은건 봉건 사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좀바르트의 견해에 따르면 봉건제에서 영주 계층은 토지의 잉여생산물을 독차지하면서 이를 생산적으로 재투자하지 못하고 낭비하는데 소모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치품은 농촌에서는 만들어질 수 없었으므로 결국 도시와 길드를 만들게 되고, 도시와 길드에서 귀족들의 잉여를 흡수한 사람들이 부르조아로 성장하여 산업사회를 만들어간다는 주장입니다.
왜 당시 귀족들의 잉여가 생산적으로 재투자되지 않고 사치로 귀결되었느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있습니다.
첫째. 여성은 원래 사치하는 종족이므로.(가장 큰 이유)
둘째. 당시 기술력의 한계(추가적으로 확보 가능한 토지가 제한됨, 즉 생산적인 재투자의 한계)



피에르 빌라르(Pierre Vilar)의 견해

'금과 화폐의 역사'라는 저서로 유명한 피에르 빌라르는 산업혁명의 원인으로 유럽의 귀금속, 특히 금 부족에 원인을 찾습니다. 유럽은 중동이나 아시아, 아메리카에 비해 금 부존이 부족한 대륙이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이 쪼그라들게 되자 기축통화로 사용할 수 있는 금의 양이 제한되게 됩니다. 물론 유럽 전역에서 금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지지만 여전히 불가능했고, 중동 및 아시아에서 금을 서유럽으로 가져오는 핵심 창구였던 비잔티움제국마저 멸망하자 결국 서쪽에서 금을 찾기 위해 유럽은 확장을 추구합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금을 유럽으로 가져온 국가는 스페인이었지만, 스페인은 이 금을 유럽 대륙의 사치재를 구입하는데 탕진해버립니다. 결국 스페인의 금은 플랑드르와 네덜란드로 축적되었으나 17세기 이후 영국이 해군력을 증강시키며 이를 영국의 것으로 만들게 됩니다.(그리고 영국은 이 힘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를 이룩합니다.) 영국이 궁극적으로 패권을 차지할 수 있던 근본적인 이유는 섬나라라는 특성상 해군력에 군사력을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국의 지정학적 특성과 유럽의 금 부족이라는 특성이 영국 및 서유럽에서 산업혁명을 가져오는 근간이 됩니다.




조르쥬 바타이유(George Battille)의 견해

조르쥬 바타이유는 특이하게도 산업혁명의 원인은 '낭비'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좀바르트의 견해와 유사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태양에너지가 지구에서 필요로 하는 것 보다 많았고, 여기에 인간의 능력이 평균적인 지구 생물체보다 많았다는 두 가지 낭비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인류에게 잉여생산물을 주었고, 잉여생산물을 주체하지 못한 인류는 사치의 형태로 '낭비'하거나 '전쟁'을 통해 잉여생산물을 소모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여기에서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잉여를 소모하는 일반적인 방법(사치와 전쟁)의 메커니즘을 정지시키고 역전시킵니다. 즉, (막스 베버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자본 축적이 정당화되는 사회에서는 잉여를 소모하는 또 다른 방법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베베의 주장과 같은 경로를 따라가며 산업혁명을 서유럽에서 발생시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견해와 학설이 있지만 일단 경제학계에서 거장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학설은 이정도입니다. 대부분 초기 경제학의 기초를 닦은 사람들이므로 오늘날 수많은 이론들도 뿌리는 대부분 이 사람들의 이론에서 갈라졌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했는데, 사실 깊게 들어가면 저도 잘 모를 정도로 이 사람들 이론이 난해합니다.(마르크스 한사람만 가지고도 100년 넘게 논란이 지속되니까요.)

클럽 여러분들은 어떤게 제일 타당성 있어 보이시나요??




by 커피프린스 | 2008/12/01 13:34 | 정치, 사회, 문화 | 트랙백 | 덧글(4)

대체역사소설을 쓸 때에 주의할 점들

* 이 글은 SF & 판타지 커뮤니티 Joy SF에 11월 26일 기고한 글을 블로그에 재탕하는 것임.



역사에는 만약(What If)이 없다고는 하지만, 대체역사에 대한 욕구는 참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실제 역사가 RPG게임의 분기점과 같은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며, 그럼에도 게임과 달리 세이브/로드가 없어 다른 엔딩을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다음의 글은 조지프 나이(Joseph Nye, Jr.)의 'Understanding international conflicts'라는 책의 일부분을 발췌하여 필요한 부분만 옮긴 것입니다. 이 책은 본래 국제정치 이론서이고 책에서 하는 분석 또한 역사적으로 하나의 분기점을 이야기할 뿐이지만, 여기서 분석된 요소들은 대체역사소설을 구상하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가상사실(counterfactuals)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사실과는 다른 조건이나 인과관계의 주장을 판단하기 위한 정신적 실험으로, 역사에는 실험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은 불변으로 놓고 한 가지만 변화하는 상황을 가정한 다음, 세상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해 보는 방법입니다. 역사가들은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종종 역사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교한 형태의 가상사실을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1890년에 카이저가 비스마르크를 해고하지 않았다면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은 발발했을까요? 이 경우는 특정 사실(1차대전)에 특정 인물(카이저와 비스마르크)의 영향력이 얼마나 컷는가를 알아보는 관점입니다. 만약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운전사가 '그 운명의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지 않았고,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우연(혹은 운명)이 역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보는 도구가 됩니다.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가. 혹은 암살사건이 없었어도 1914년의 유럽 세력분포는 전쟁을 필연적으로 가져왔을 것인가.

사실과 반대되는 조건을 설정해봄으로써 특정한 역사의 원인이 중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조사할 수는 있지만, 그와 같은 조건부 역사 속에는 위험이 숨어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가상사실을 잘못 다루면 가상사실은 오히려 역사의 의미를 파괴하고 잘못된 결론으로 귀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번 일어났다는 사실은 사실과 다른 결말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시간은 결정적 차원이고 역사적 사건은 경로종속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여러 사건들이 한번 어떤 특정한 경로로 시작되면 미래의 모든 가능성들은 결코 동등할 수 없고, 어떤 사건들은 다른 것보다 그 가능성이 '항상(가상사실에도 불구하고) 높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상사실을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기준을 준거로 판단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  신빙성, 근접성, 이론 사실.

신빙성 : 유용한 가상사실은 타당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를 공동입주 가능성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는 여러 개의 조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만약 나폴레옹이 스텔스 폭격기 편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워털루 전쟁에서 이겼을 것이다.'라는 가상사실을 제시한다면 이는 어떠한 신빙성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근접성 : 각각의 주요한 사건은 긴 사슬 속에 존재하며, 대부분의 사건은 복합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의 시점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다른 원인들을 고정시키고 가정을 행해야 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안토니우스에게 덜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고 로마의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파스칼의 유명한 말을 생각해봅시다. 로마의 역사가 달라졌다면 서유럽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고 따라서 클레오파트라의 코는 1차세계대전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클레오파트라의 화장을 담당한 하녀는 1차대전의 전범 중의 하나입니다.) 
아주 작은 의미에서는 그런 추론은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1914년 8월의 사건에는 몇천만 가지의 사건과 원인들이 녹아들어 있고,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미친 영향은 매우 작습니다. 시간의 근접성이 중요한 점은, 이로 인해 다른 원인들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론 : 이론에 부합된다는 것이 반드시 기존 이론(역사관이든, 국제정치 이론이든)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론적 타당성, 다시 말해 논리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스텔스 폭격기 편대를 가지고 있었다'는 가정은 '만약 흐루시초프가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키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과 비교하면 어떠한 논리적 배경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실 : 가정을 통해 일부 사건이 변화되었다면, 나머지 사건들이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되어야 합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2007년까지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가정은 황태자 암살사건 이외의 사실들, 즉 유럽 각국의 세력균형이라는 사실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by 커피프린스 | 2008/12/01 13:31 | 현실, 유희, 전뇌 | 트랙백 | 덧글(3)

11월 4일

오늘은 1917년 11월 4일 볼셰비키 혁명으로부터 91년이 되는 날입니다.

잘되었건 잘못되었건, 지난 90년간 어떤 일이 있었건, 인류의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던 날입니다.




by 커피프린스 | 2008/11/04 14:02 | 정치, 사회, 문화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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